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 제국/역사 (문단 편집) ==== [[네 황제의 해]]의 혼란 ==== 네로가 죽은 이후 반란을 일으켰던 갈바가 AD 68년 6월 8일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애당초 갈바는 모두의 기대와 달리 젊은 시절의 총명함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경직되고, 비타협적이었으며 잇딴 실책을 벌였고 아우구스투스 가문이라는 정통성을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곧 많은 반발을 불러왔고 특히 라인강에 주둔 중이던 게르마니아 군단은 AD 69년 1월 2일 자신의 사령관인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옹립하여 일찌감치 갈바와 대립하였다. 이는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갈바는 원로원에게 네로에게 받은 선물 금액을 임의로 책정해 이를 모조리 뱉어내라고 명하고, 측근들과 애인들을 요직에 앉혀 부정부패까지 기승을 부렸다. 또 피소 사건의 피해자 피소 리키니아누스를 양자로 삼는 등 계속 정치적으로 무덤을 팠다. 이런 탓에 그는 신망을 완전히 잃었고 같은 해 1월 15일 쿠데타가 발생하여 오토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였다. 이렇게 하여 갈바는 네 명의 황제가 교체되는 AD 69년의 혼란 속에 사망한 첫 번째 황제가 되었다. 이후 오토가 황제가 되었으나 비텔리우스 때문에 그의 지위는 매우 불안하였다. 하지만 그는 네로 시대의 관료들을 복귀시켜 행정공백을 최소화시키고, 비텔리우스 측에 사절을 보내 내전을 최대한 막아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오토와 비텔리우스 측은 결국 맞붙었고, 오토 역시 3개월 뒤 비텔리우스군에 패했다. 이때 그는 패전의 책임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겨 자살했다. 그렇게 오토는 AD 69년에 죽은 두번째 황제가 되었다. 오토를 운좋게 이긴 비텔리우스는 단독황제가 되었으나, 애당초 그는 레누스(라인강) 일대 사령관에 있던 사정 탓에 운좋게 제위에 오른 지극히 무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부하들의 전황을 방치했고, 7개여월동안 연이은 환락생활로 9억 세스테르티우스라는 거액을 날릴 정도로 부패했다. 또 그는 국가의 적으로 공인된 네로를 존경한다며, 그의 명예회복까지 시도한 탓에 로마인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가 군대의 추대를 받아 황제로 즉위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이리하여 AD 69년 한 해 동안 로마 제국에는 황제가 4명이나 등장하는 대혼란이 발생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